이 카테고리 이름을 정했을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글을 적고싶진 않았던 건 확실하다. 그래도 옛날의 내가 정해놨던 카테고리 중에 이곳이 제일 성격에 맞는 것으로 판단된다. ㅋㅋㅋ 옛날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카테고리를 만들었을까. 무엇을 잃었길래 있을 때 챙기자라고 만들었을까.
2021년 말 용용이는 늦은 나이에 중성화를 했다. 개인간 교배가 불법이 되기 전 사랑스러운 용용이 2세를 거두고 싶었다. 용용이의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 너다섯군데는 다녀왔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대중적인 반려견 사이즈가 작기도 하고 만났던 암컷 강아지에 비해 용용이가 너무 컸다. 엄마가 작고 아빠가 크면 엄마 강아지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병원 교배도 알아봤지만 대부분은 이랬다. 병원이 수컷 강아지를 데리고 있고 개인이 암컷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교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유기견 문제로 개인간 교배가 불법이 되었다. 가족 만들어 주기는 포기해야한다. 더 늦기 전에 오래 함께하고싶어 중성화를 했다. 수술 후 보여줬던 봉알의 사진은 정말 건강해보였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괜히 했나. 몸에 칼 댄 것이 너무 미안했다.
2022년 11월 용용이 건강 검진을 정자동 24시 폴 동물병원에서 마쳤다. 이 병원에 건강검진 코스는 세가지가 있는데 10살인 용용이에게 제일 비싼 건 필요하지 않은 항목이 많다며 바로 아래 단계의 코스를 추천받았다. 의심없이 그 건강검진으로 진행했고 지금도 이에 대해 불만은 없다. SARDS 라는 병은 겉보기엔 아주 멀쩡하고 검사 수치도 정상으로 나온다.
2022년 12월 중-후반부터 용용이의 다름을 발견했다. 불이 꺼져있어도 잘 내려가던 계단을 불이 없으면 내려가질 못했다. 집 앞의 작은 계단들, 맞은편 집의 계단, 밤새 내놓은 박스, 쓰레기 봉투 등 길거리의 변화를 보지못하고 부딪쳤다. 집 안에서도 위치가 바뀌거나 새로 꺼낸 가구들에 부딪쳤고 엎질러댔다. 어떤 가족은 그런 용용이를 나무랐다. 나는 그저 노화 현상으로 생각했다. 치매일까? 무슨 검사, 무슨 치료, 어떤 병원을 가야 좋아질까 고민 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얘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병원 데리고 가봐" 병원에 가기 전 인터넷에서 알아본 내용을 토대로 용용이 시력 검사를 해보았다. 첫번째는 눈에 손을 확 가져다 대기. 시력이 있다면 눈을 움찔할 것이다. 하지만 용용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손에 간식을 들고 공중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보기. 오른쪽은 조금 따라오는데 왼쪽은 따라오지 못했다. 세번째는 한 손에 간식을 높이 들고 다른 손으로 떨어트리기. 다른 손으로 받는 이유는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쳐다보지 않도록 받아내는 것이다. 이 때 눈으로 떨어지는 간식을 따라오면 된다. 하지만 용용이는 간식이 없는 높은 손만 보고 아래에 간식을 받아낸 손을 보지못했다. 결과가 너무 속상하지만 재빨리 병원을 찾아보았다.
용용이와 동년배의 반려견이 있는 친구에게 병원을 추천받았다. 즉시 달려갔다. 용인죽전24시스카이동물메디컬센터. 아오 이름이 너무 길다. 이하 스카이병원. 검사 전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시력을 검사했고 순식간에 시력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속상했다. 그 후 안압검사, 안초음파, 망막전위도검사 세가지를 진행했고 모두 정상이었다. 무지한 내가 이해한 바로는 안압을 검사했고 정상이라 녹내장 소견 없음. 망막을 초음파로 검사했는데 문제 없고 아주 깔끔하여 정상. 미세극등검사로 각막, 수정체를 검사했으나 이 또한 정상으로 백내장 소견도 없음. 근데 시력이 없다. 나는 환장한다. 스카이병원에서 안저검사를 추천했고 그 검사는 스카이에선 하지 않기때문에 다른 병원을 추천받았다. 주차장으로 가서 전화로 예약하려 했지만 3달치 예약은 꽉 차있고 취소자가 나오면 그 때 연락을 해줄테니 대기자 등록을 하란다. 일단 대기를 걸어놓고 집으로 갔다. 며칠이 지나자 엉덩이에 뿔이 나는 것 같았다. 바로 안저검사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냈고 찾아갔다. 검사 후 SARDS 로 보인다고 얘기하셨다. 더불어 "치료를 .. 계속 하시겠어요?" 라고 물으셨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고 했더니 다른 병원을 추천해주셔서 받아들고 집에 왔다.
구글링으로 찾아본 결과 SARDS 의 치료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스테로이드 치료와 나머지는 줄기세포 치료다. 고스테로이드 치료는 인간인 나도 맞기 무서운데 용용이에게 놓고싶지 않았다. 줄기세포 치료로 SARDS 강아지가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영상을 찾았다. 그 병원에 연락해 용용이의 사정을 설명하고 상담을 받았다. 그 병원이 멀지도 않다. 다만 치료 가격이 심하게 비싸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게 해준다는데. 심청이의 심정으로 예약금을 입금하려고 했다. 그래야 지금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다음 주엔 주사를 놓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 언니가 현재는 반려동물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기에 혹시나 싶어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 입금하려고 한다고. 그랬더니 연결된 병원이 있는 회사 동료분께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하여 입금을 멈췄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검색했는데 찾아낸 SARDS 견주 단체 톡방을 발견했다. 거기엔 많은 걸 해보고 알고있는 선배님들이 계셨고 이것저것 여쭤봤더니 감사하게도 한 줄로 요약해주셨다. 돈지랄 개고생. 나중에 연락온 디자이너 언니도 더 악화될 수도 있고 심하면 안구 적출해야될 수도 있다고하여 은행 앱을 종료시켜버렸다. 선배님들은 그 돈으로 더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경험 시켜주라고 하신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 치료들 하지 않겠다면서.
용용이는 평소에 귀 염증이 자주 있어서 귀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눈을 이런 식으로 잃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용용이는 항상 나에게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 새로운 세상을 보게하고 깨닫고, 알던 것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용용이에게 이 병이 온 것도 나에게 뭔가 알려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니 번뜩한다. 여태까지 눈에 보이는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가르쳐주려는 것이구나! 싶다. 사랑엔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언제든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일 죽을 사람인 것 처럼 바삐 살았던 내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줬다.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가.
그 이후로 용용이가 박을 만한 곳에 스펀지를 대놓고 산책나갈 땐 고글을 씌운다. 좀 답답해하긴 하지만 SARDS 확진을 받고 한달이 조금 더 지났는데 고글에 상처가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 속의 용용이는 항상 밝고 빛나고 사랑스럽고 막 그렇다. 눈만 보이지 않을 뿐 용용이는 항상 그대로다. 변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 생각 뿐이었다. 나는 약간의 관종끼가 있는데 고글을 쓴 용용이와 산책을 하면 인기 폭발한다. 지나치는 사람마다 돌고래 소리를 낸다. "어멌~~~~~~~~~~!! 고글썼네에??? 너 무 귀 여 워 !" 이렇게. 그렇다. 용용이는 항상 귀엽고 항상 그랬다. 후후. 내 동생이고 나는 얘 누나다. 후후후후.
그러고보니 개인적인 부작용이 생겼다. 속상한 마음에 자주 울어서 그런가 눈물이 아주 많아졌다. 그것도 아주. 친구 부모님 장례식에 가서 내가 울다가 친구가 나를 위로해주고 동료 언니의 결혼식에 가서 내가 울었다. 울지 않으려고 눈알을 부여잡고 울었다. 마스크 속으로 감춰지지가 않더라. 하하. 이게 노화인가. 머쓱.
지금 바람은 용용이랑 대학까지 가고싶다. 11살이면 아직 초등학생인데 갈 길이 멀다. 누나는 중학생 때부터 알바했다구. 용용이는 그냥 편하게 먹고 자고 싸고 했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안 아팠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안 아파야 용용이 들고다니지. 이제 운동하러 가야겠다. 락스물 먹으러 갈 시간이네. 세상에 모든 동물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잠들듯 그렇게 다른 세상으로, 다른 별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용용아 누나가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