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로동

프로젝트 좀보이드 ㅅ1발

박덕구 2023. 4. 1. 09:49

난 완벽주의자다. 해야할 걸 잘 미룬단 뜻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할 일을 미루며 밍기적 거리다가 좀보이드라는 게임을 알게 됐다.
 
애인님과 나는 미친듯이 좀보이드에 빠져들었다. 둘 다 생존 게임에 진심이기도 하지만 마치 좀보이드를 하지 않으면 죽을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눈뜨면 좀보이드를 켰고 졸려서 눈이 저절로 감기기 전까지 했다. 좀출(좀보이드 출근), 좀퇴(좀보이드 퇴근)이라고 명명해가며 하루에 1n 시간을 게임했다. 나는 게임을 하면서 식사까지 해결했다(사실 이건 별것도 아니지만). 일을 이렇게 했으면 스티브 잡스 뺨 못 때렸다. 내가 10시간 해봐야 뭐 되겠나 ㅋ. 나는 자아성찰 킹이다. 아무튼 그정도로 열심히 했다는 뜻이다.
 
생존 게임인 만큼 거점(집) 영역이 필요하다. 식량과 아이템을 모으고 적에게서 안전한 곳 말이다. 굶지마는 여름 자연 발화를 대비해 얼음 분사기(이하 얼분기)의 영역 안에 가구를 설치하면 된다. 더 포레스트는 식인종, 돌연변이를 막기위한 울타리만 치면 된다. 이렇게만 하면 얼분기 영역 안, 울타리 안은 안락한 집이 된다. 유저(이하 좀붕이)들 사이에서 좀보이드는 건축 둇망겜이라고 불린다. 왜일까? 좀보이드는 바람을 막기 위한 벽이 있어야 하고 비를 막아줄 천장이, 좀비를 막아줄 문이 필요하다. 추가로 실내/실외 개념이 있는데 실내 판정이 이상한 데서 까다롭다. 또 벽, 천장, 문을 만들어야 하기에 나무도 둇나 패야하고 못도 필요하고 아무튼 재료를 가져와야 한다. 이미 있는 집을 거점으로 삼지 않는 이상 내가 원하는 집을 만들려면 정성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처음부터 집을 지어서 살자! 는 방향으로 게임을 하진 않았다. 로즈우드의 소방서 뒷 집, 로즈우드의 소방서, 리버사이드의 주유소를 집으로 삼았다. 마지막엔 루이빌의 부촌 끝집이었는데 앞엔 주유소가, 옆엔 울타리가, 뒤엔 낚싯터가 있어서 거점으로 많이 추천되는 곳이다. 다람쥐병이 있는 나는 절라 큰 주방이 필요했는데 이 집 주방 구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상한 곳에서 벽이 꺾이기 때문인데 이 벽을 반듯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벽을 허물고 새로 벽을 짓고 천장도 만들어줬다. 근데 딱 그 부분만 실내 판정을 받지 못했다. 실내 판정을 받지 못하면 벽 안에 있지만 실외 날씨가 적용된다. 비가 오면 젖고 바람 소리가 훵훵 들린다^^.. 열받은 나는 디버그 모드로 내가 지은 벽, 바닥, 천장, 기둥이 제대로 인식되는지 확인하며 다시 지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개짜증났다. 시부럴. 꼴보기 싫지만 원래 구조로 되돌렸다. 씅에 차지 않았다. 개같은 구조를 어떻게든 꾸며보려고 Better Tiles Picker, More build 등의 모드를 사용해 열심히 꾸몄다.
 
 

주방과 식당.

십자가는 멋있어 보여서 달았다. 어두운 색의 주방이 갖고싶었다. 사진을 보면 주방과 식당이 이어져있는데 나는 전부 다 주방으로 쓰고싶었다. 첫째 사진 3시 방향에 해리포터 상처 모양으로 튀어나온 벽이 그 색기다. 하지만 겸허히(ㅅㅂ) 받아들이고 졸라 정성껏 꾸몄다. 주방을 완성하고 다른 곳도 꾸몄다. 모드를 이용해 뚝딱 짓던 나와 달리 애인님은 다른 집에서 훔쳐오거나 떼어오곤 했다. 만들 수 없고 떼어올 수 없는 것만 모드를 이용했다.
 

세탁실
거실 1. 애인님의 작품이다.
거실 2. 여기도 애인님의 작품. 피아노와 러그를 훔쳐왔다.
창고. 애인님이 색칠을 맡았다.
2층 큰 화장실
2층 작은 방
2층 복도. 바를 만들고 싶었다.
2층 큰 방. 최고 맘에 들었다.
2층 작은 화장실
집 밖의 주차장. 애인님이 선 하나하나 고르느라 고생 좀 하셨다.

방마다 색깔을 정하고 그 컨셉에 맞게 타일을 찾고 꾸미는 재미가 쏠쏠했다. 앞으로 살 집이니까 정성들였다. 다 만들어놓고 들락날락 거리며 뿌듯했다. 사진도 마구 찍었다. 근데 밖에서 주차장을 만들고 온 애인님이 하는 말이 감탄사가 아닌 "집이 왜이래?" 였다. 애인님과 나는 디스코드로 통화하며 화면을 공유해 세컨 모니터에 띄워놓고 서로의 게임 화면을 본다. 애인님의 게임 화면을 보니 꽤 충격적이었다. 벽, 바닥, 구조물들이 순서가 뒤섞여 벽이 가구를 뚫고 앞으로 나와있는 등 엉망이었다. 하.... 또 빡이 차오른다..... 재접속을 하니까 이젠 내 화면에서도 깨진다. 다시 예쁘게 꾸며도 엉망진창인 모습이 원래 모습인 것처럼 되돌아왔다.
 

벽이 냉장고 앞에 있다. 시불.
냉장고는 한칸씩 짤렸고 찬장은 어디 갔는지 싱크대만 남아있다. 그것도 바닥에. 신발.
썅. 벽이 날아가는 건 좀 그렇잖아.

제일 먼저 실험했던 2층의 작은 화장실만 살아남았다. 이럴 때 위스키를 마시는 거라고 배웠다.
 

ㅎr,,,,,, ㅅ1ㅂr,,,

 
모드가 문제였을까? 애인님이 직접 떼고 훔쳐서 만든 거실은 살아남았고 모드로 만든 몇몇 작품이 엉망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깔을 잃어벌였다. 4층 상자는 뭔데..

주차장도 조금 깨져있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애인님은 위스키를 깠고 나는 맥주를 깠다.

ㅅ1벌.

 
이렇게 된 거 새로 집을 짓자. 근처에 호수도 있고 도시랑 가까운 곳에 살자. 멀드로우 왼편에 있는 3개 호수 근처로 결정했다. 새 서버도 만들고 맵 모드도 추가했다. 좀 더 멋진 집, 더 멋진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 세상에서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뀔 때까지 버텼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겨울을 맛보고 싶었다. 이내 첫눈이 내렸다. 이 멋진 집에서 지낼 사계절을 상상을 했다. 아직 초겨울이지만 호들갑을 떨었다. "집 밖에 설치한 빗물받이 통이 얼어버린대!" "호수가 얼어서 차로 지나갈 수도 있대! ㅋㅋㅋ"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또 너무 모드에 의존하지 말자. 계단을 만들려면 목공 6레벨이 되어야 하니까 실제로 6레벨을 만든 다음 모드 계단을 써서 예쁘게 만들자 크크크큭.
 
새 세상에서 나는 스킬 업에 집중했고 애인님은 새로 추가한 모드 차를 가지러 가겠다며 세상을 탐험했다. 근데 애인님이 원하는 차가 나오질 않았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몇가지 맵 모드를 더 추가하자고 했다. 나도 그러자며 겹치지 않는, 우리가 아직 맵을 열지 않은 곳에 모드 맵을 추가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의 세상에 들어갔다.
 

위스키 졸라 맛있다. 여기 위스키 맛집이야. 분명 부엌 식탁에 앉아있는데 옆에 잔디가 있고 나무가 있고 그르네. 슈발.
 
 
 

집 한 가운데가 날아갔다. 좀보이드 개좃망겜. 날짜를 보면 10월 24일이다. 7월 9일에 시작해서 저만큼 살았다. 저 위치는 세탁실, 거실, 창고가 있는 부분이었다. 모아둔 템이 다 사라졌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함께 날아갔다. 외부 계단도 없어서 또 디버그를 켜고 들어와야 2, 3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애인님의 정비소도 예외는 없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무를 베고 다시 집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이상한 행보가 계속되었다. 집에서 멀리 나갔다 들어오면 원복이 될 때도, 안될 때도 있었다. 또 내 화면엔 멀쩡한데 애인님 화면에선 엉망인 경우도 있었다.
 
이제 때가 됐나보다. 여태 미뤄왔던 일들을 할 때가 됐다며 조상님께서 좀보이드를 좃망진창으로 만들어 주시나보다. 빡종의 기운이 스멀스멀 거렸지만 불굴의 애인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새 서버를 만드는데 디버그를 켜고 각자 어드민을 준 후 이전 서버에서 찍었던 스킬 레벨까지 올려버리자. 그리고 집을 퀵하고 빠르게 다시 짓자! 이제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게임이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인가 건축 게임인가.
 
서버 이름을 theLastZomboider 로 만들고, 강제로 스킬업을 하고, 건축 모드와 속도 모드로 재료 소모 없이 아주 빠르게 집을 뚝딱 지었다. 이전에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조금 더 맘에 드는 집을 지었다. 애인님도 건너편 차량 정비소를 더 알차게 꾸몄다. 우리의 목표는 겨울을 무사히 지내보는 것. 눈이 녹아서 오는 봄을 맞이하는 것. 큰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식량을 모으고 내일을 준비할 아이템을 모았다.
 
어김없이 찾아온 그 날은 평화로웠다. 파밍한 아이템을 정리하고 부엌에서 밥을 먹으며 앞으로 뭘할지 얘기하고 있었다. 애인님과 다르게 요리 스킬을 만렙 찍은 나는 온갖 상한 재료를 때려넣으며 음식을 만들었다. 그 때 주방 창밖 너머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거기 있으면 안 되는 것인데. 내가 잘못 봤겠지 싶었다. 애써 부정하며 부엌에서 그것 근처로 이동했다. 마른 세수를 한번 하고 확신했다. 그것은 불이었다.
 
좀보이드에서 캠프파이어를 만들어 땔감을 넣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캠프파이어 위에 불이 생긴다. 그 불이. 캠프파이어 위에 있어야 할 그 불이. 정비소와 집 사이에 있는 것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집 일부분이 불타고 있었다. 부엌으로 달려가 소화기를 가져오며 애인님께 불이났다고 전했다. 망할 소화기는 몇번 못쓰고 끝나버렸다. 이제 물로 꺼야한다. 하지만 물을 뜨는 것보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심지어 애인님은 양동이를 몽땅 든 채로 불 타 죽어서 양동이가 세개만 남았다. 나는 양동이 세개와 물병으로 열심히 불을 껐다. 하지만 1층에 불을 끄면 2층에서 불이 내려왔고 2층을 끄면 1층의 불이 올라왔다. 결국 나도 불타 죽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새 캐릭터로 살아났지만 멍청하게 서있기만 했다. 어디선가 펑 펑 터지는 폭발음이 들렸다. 여전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불타 죽어서 그런지 에러가 나면서 새 캐릭터가 알몸으로 태어났다. 인생 참 허무하다.
 

내 밭 ㅅㅂ

신발도 없이 태어나서 발에 상처가 났다. 내 맘이 더 아팠다. 2층의 드레스룸, 작업실, 복도까지 탔고 방도 타고있다.

 
 
이 불이 어디서 왔을까. 제일 먼저 본건 집 위쪽이었고 거기엔 정비소가 있다. 우리 집은 아직 불타고 있으니 정비소도 이제 막 타고 있겠지? 정비소를 가봐야겠다.
 

 
엥. 정비소가 싹 다 모조리 에블바리 머리부터 발끝바리 시바리 다 타버렸다. 아무래도 정비소에서 불이 시작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정비소엔 불이 날 꺼리가 없다. 정비소 주인(?)인 애인에게 "전자레인지에 쇠붙이를 넣고 돌렸어?" 라고 물어도 의미가 없다. 계속 같이 있었으니까. 정비소의 냉장고에서 불이 난다고? 아니면 설치해놓고 켜보지도 않은 티비에서 불이 나나? 정비소에 있는 기계를 생각하봐도 몇개 없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애인님이 한 마디 했다. "발전기에서 불이 난 것 같아." 구글링을 해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파밍하기 바빠 상태가 안 좋은 발전기에 연료만 계속 채웠던 문제였다.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서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진찍어두길 잘했다 싶다. 이 글을 쓸 요량으로 스크린샷을 찍은 건 아니었는데..... 슈발.
 
다친 발로 호다닥 뛰어다니며 우리의 기억을 사진에 남겼다. 능욕하는 건지 능숙한 달리기 레벨이 올랐다. 열받네 진짜.

 
 
우리의 좀보이드 마지막 장면은 이 장면이다. 시작은 아름다웠다. 끝은.. 아주 뜨거웠다. 단기간에 이렇게 열심히 했던 게임은 굶지마 이후로 처음이다. 집 짓는데 집중하다가 진이 빠져버려서 잠시 쉬지만 게임은 참 재미있다. 나중엔 디스코드 통화도 화면 공유도 없이 무전기로 소통하며 다시 한번 해보고싶다. 당분간은 다이빙에 집중하고 목표에 도달해야겠다. 그 목표도 좀보이드의 목표처럼 불타 없어지지 않게 소중히 다뤄야지.. 행복한 좀붕이는 잠시 떠납니다. 좀보이드 안녕!
 

스피포 귀여웡 💜